마음을 밝혀 주는 보배로운 거울, 明心寶鑑!
지난 700여 년 동안 한민족의 마음을 밝혀 준 지성과 덕망의 교과서
『명심보감(明心寶鑑)』은 ‘마음을 밝혀 주는 보배로운 거울’이라는 의미의 책 제목이 그대로 드러내듯이 교육용 훈화집이다. 이미 간행된 여러 전적에서 마음의 양식이 될 만한 것들을 골라 엮었기 때문에 문장이나 내용에 통일감이 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으나 교육적인 내용을 담은 명담, 격언 등 하나하나가 독자적인 진리와 덕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공자·맹자 등 유교의 성현, 장자·노자 등 도가의 사상가, 태공·사마광 등 정치가, 유비·당태종·송휘중 등 제왕, 도연명 등 문인, 주돈이·정호·정이·주희 등 송나라의 성리학자, 동악성제·재동 제군 등 신선에 이르기까지 인용되는 인물이 매우 광범위하다. 게다가 다른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귀신 이야기가 포함되는 등 잡다하다고 할 만큼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수많은 금언, 격언, 좌우명도 볼 수 있다.
저자 : 추적
『명심보감』이 저술된 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1298년 이후 20년 이내에 고려의 문신 추적(秋適)이 쓴 것으로 보인다. 한편 중국 명나라 초기의 범립본(范立本)이 1393년에 『명심보감』을 엮었다는 설이 있는데, 범립본은 추적보다 거의 90~100년이나 뒤늦은 인물이다. 대구의 『인흥제사본』을 엮은 이가 추적이라 했는데, 그 뒤에 성균관대학교의 이우성 교수가 청주판 『신간 교정대자 명심보감』을 발견하여 범립본이 편찬인이라 했다. 원본은 범립본이 편찬했고 추적이 그 원본을 새롭게 엮은 초략본을 냈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지만, 추적과 범립본의 활동 연대를 고려하면 이는 앞뒤가 맞지 않다. 그러므로 『명심보감』을 편찬한 사람은 추적이고, 범립본이 그 뒤에 『명심보감』에 손을 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양지(陽智) 추씨의 시조인 추적(秋適)은 호가 노당(露當)이며, 고려 25대 충렬왕 초기에 과거에 급제하여 안동서기, 직사관, 좌사간 벼슬을 거쳤다. 추적이 벼슬살이를 하던 때는 충렬왕의 재위 기간(1274~1308년)으로 고려는 국정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 1298년 환관 황석량이 권세를 이용하여 자신의 고향인 충남 당진군 합덕부곡을 현으로 승격하려 할 때 추적이 서명을 거절한 일이 있었는데, 황석량이 이에 앙심을 품고 참소하여 추적이 순마소에 투옥되었다. 이때 호송하던 사람이 추적에게 “지름길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했지만 추적은 이를 거절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무릇 죄가 있으면 해당 관청으로 가는 법이다. 왕의 처소에서 칼과 철쇄를 씌우는 일은 없으니 나는 마땅히 네거리로 지나가서 나라 사람들에게 내 모양을 보이겠다.” 간관(諫官)으로서 칼을 쓰고 가는 것이 오히려 영광이라는 의미로, 그의 대쪽 같은 성품이 드러난 일화이다.
이후 추적은 다행히 풀려나와 북계 용주의 수령을 역임했다. 충렬왕 말년에는 안향의 발탁으로 이성, 최원충 등과 함께 7품 이하의 관리나 생원 등의 유학 교육을 담당했는데, 이때 추적은 『명심보감』을 편찬하여 교재로 사용했다. 추적은 민부상서, 예문관제학에 이르러 치사(致仕)했다. 이처럼 높은 직위에까지 올랐으나 추적은 손님을 접대할 때는 쌀밥에 생선이면 충분하다고 할 만큼 검소하고 청렴했다. 이런 검소한 생활 태도는 『명심보감』의 근본정신을 이룬다. 또한 추적은 임금의 잘못을 지적하는 좌사간을 지냈을 만큼 공명정대하고 인품이 고매했다.